
그가 그녀를 집에 안고 갈 때 큰 남자애들은 낄낄거렸다, 그래, 그녀는 노래를 너무나 못하는데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슬프고 세탁물에서 발견한 그녀의 팬티가 이제 엄청나게 큰 것도 슬프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화장용 장작더미를 가로지르려면 염병할 몸이 엄청나게 뜨거워질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 조지 손더스 <윙키>
한동안 SNS에 유행하던 말이 있다. 당신은 소중하기 때문에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대상을 끊어내는 게 옳다는 말. 나는 그 말이 계속 불편했다. 사람이 타자와 관계를 맺다 보면 불편한 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불편한 대상을 모두 끊어 내면 결국 남는 건 혼자인 나 자신 뿐이다. 그렇게 되면 편안은 하겠지만 행복할 수 있을까?
조지 손더스의 <윙키>는 주인공이 호텔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임을 이끄는 남자는 '내 소중한 오트밀에 똥을 투척하는 사람'을 물리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보면서 참고 있는 건 '내 오트밀에 계속 똥을 싸주세요'라고 말하는 꼴과 다르지 않으며, 그것은 결코 상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게 요지다. 그에게 차갑지 않게 합리적으로 '이제 내 오트밀에 똥을 그만 싸고 나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모임에서 주인공은 자신감을 갖는다. 그래, 오늘은 말할 거야 다짐하며 자신의 집에 있을 누이 윙키, 그의 삶에 끊임없이 똥을 투척하고 있는 윙키에게로 (결연하게) 향한다.
소설은 이 장면에서 갑자기 윙키의 시점으로 바뀐다. 그는 어딘가 모자라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은 가득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하다. 생활은 뒤죽박죽이다. 그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그 다름이 주인공을 귀찮게 해왔으리라 짐작된다. 그렇지만 그가 주인공을 떠나 홀로 살 수 있을까? 누군가의 도움이 너무나도 필요해 보이는데.
다시 소설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뀐다. 그는 집에 가는 길에 자신의 오트밀에 계속 똥을 투척하는 존재, 윙키를 떠올린다. 그가 윙키에게 나가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는 윙키의 삶에 똥을 투척하는 셈이자, 자기 자신의 오트밀에도 똥을 투척하는 한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윙키와의 일들을 떠올리는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윙키의 말도 안 되는 노래와 그의 거대하게 늘어진 팬티 같은 것을 떠올리다 보면 분노가 차오르면서도 가슴이 미어진다. 주인공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줄 차를 우리고 있는 윙키의 눈을 바라보지도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씩씩거리며, 욕설을 내뱉으며. 윙키에게 내뱉는 욕설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 내뱉는 말이라 그는 분노로 미어진다.
물론, 주인공은 행복하지 못하다. 윙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윙키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지 못한 주인공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화살을 돌려야 할 건 이런 윙키 같은 인물을 개인에게 온전히 떠맡긴 사회에 있지 않을까. 윙키가 오갈데가 없는 건 물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사회적 문제다. 그런데 이것을 주인공 개인의 문제로 수렴해 버려, 윙키를 내치지 못하는 그가 한심한 사람이란 낙인을 찍어 버린다. 다정한 말씨로 '위로'를 말하고 있지만 실은 너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네 탓임을 손가락질 하고 있는 SNS 문구처럼.
다 너를 위한 말이라는 위로의 말을 이제는 거두길, 결국 자기 자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게 결국 또 스스로를 탓하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주길, 이젠 그 손가락을 거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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