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나 늦은 10월의 책일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어, 한 단어 씩 겨우 쓰고 있다. 10월에는 7권의 책을 읽었다. 11월이 시작하자 속도가 더뎌졌다. 새로운 책을 몇 권 구입했고 도서관에서도 빌려왔다. 책꽂이에 쌓여가는 책이 숙제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보려 노력 중이다. 실패하는 날들이 더 많다. 말이 많아지고 글에는 알맹이가 없어진다. 과거를 많이 생각한다. 요즘은 과거의 일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때의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늘 불안했고 초조했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엇나가려 했다. 내가 아닌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지 않으려 도망다녔다. 하지만 도망친 곳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모두 내가 깬 유리들이었다. 불안했다. 누구에게도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약한 존재인 걸 나만 알았으면 했다.
책일기1
아니 에르노 <그들의 말 혹은 침묵>

"가끔 내게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비밀은 아니다.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없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니까.(첫문단)"
10대 시절 내가 원하는 건 집을 떠나는 일 하나 뿐이었다. 집에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같은 취미나 취향을 공유할 사람도 없었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 나는 웃고 떠들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밖으로도 다 들릴 정도로 볼륨을 키우고 음악을 들었다. 그때 나는 이미 내가 어른이라 생각했다. 그저 돈을 벌지 못해 이 집에 얹혀 산다고 생각했다. 일기장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가 담겼는데, 그것이 비밀이라기 보단 그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방학이 되면 느슨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와 앞으로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짓눌려, 엄마가 요리할 때 사용하는 정종을 마셨다. 취한 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저녁의 빛이 노란 커튼을 통과해 들어왔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게 얼마나 안온한 소리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에르노의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속 주인공 '안'도 지금 자신이 통과하는 시간이 그저 지겹기만 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자신만 혼자 그 자리에 남아 있을까 두렵다. 부모의 말은 하나 같이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방학에 주어진 장래희망에 관한 글쓰기 숙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쓰고 싶어한다. '지난번에 만났던 소형 오토바이를 탄 남자애들, 더 멀리 올라가면 내가 염두해 뒀던 중학교 때의 몇몇 남자들 등(76P)'에 대해 쓰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방학 내내 아무 일도 없을 예정, 다른 친구들은 모두 경험하고 있는 듯한데, 초조해진다. 부모는 여름 휴가로 고작 친척들이 있는 고장에 갈 생각을 할 뿐, 바닷가에서 여유를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짓은 '젊은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는데, 그 말에 의하면 나는 충분히 젊은이가 아닌 듯하다.
우리의 '안'은 좌절하고 엎어져 있는 대신, 나보다 앞서 남자들을 만나는 친구 가브리엘을 만난다. 덕분에 남자를 만난다. 가브리엘과 시쳇말로 썸을 타고 있는 남자 마티외를 만난다. 안은 그를 원한다. 그가 자신을 원할 때 느낌을 좋아했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일이 펼쳐진다. 좀더 부드럽게 자신을 대했으면 좋겠지만 마티외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이 혼란을 혼자 품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는 다른 날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티외가 자신을 계속 요구하기를 원한다. 아니, 사실 그건 마티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티외의 친구가 자신을 원했을 때 뿌리치지 않았다. 그것이 가브리엘과 자신이 마티외를 공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틀렸다. 마티외는 단단히 화가 났다. 그것은 불평등하다. 왜 남녀가 만나는데도 이렇게 격차가 생기는 것일까.
안의 이야기를 보며 첫 연애가 떠올랐다. 그때 만났던 애인은 나와 만난지 100일 쯤 되었을 때 다른 여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그 애가 했던 말은 '남자는 어쩔 수 없다'였다. (이건 벌서 십여 년 전 된 이야기니, 그도 더이상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 이후로도 '어쩔 수 없이' 바람을 계속 피웠다. 나는 그 말에 반발심이 생겨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에 화를 내었다. 불평등했다. 남자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애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반면, 여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이상했다. 나는 끝끝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그 관계를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나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1970년대 쓴 소설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게 굉장하면서도, 이상한 일이다.
"그 아이가 들려주려는 내용에, 말하자면, 나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자애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부 다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마련,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마치 생리와 같다. (84P)"
책일기2
저메이카 킨케이드 <애니 존>

며칠 전 유튜브 숏츠를 보다 오랜만에 <알쓸신잡> 시즌 2를 보았다. MC가 패널에게 "어린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뭐예요"라고 물었고, 유현준 교수는 형이 부서뜨린 장난감의 조각을 이용해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던 일화를 말했다. 그때 그의 부모는 그를 창의적이라고 칭찬했고, 그 이후로 그는 줄곧 버려진 것을 활용해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일화도 인상적이었지만 영상에 달린 댓글은 더 아름다웠다. 엄마 등에 엎힌 채 집에 오는 길에 그 품을 벗어나기 싫어 계속 자는 척 했다는 이야기, 부모 몰래 오락실을 가던 중 아버지가 몰래 뒤를 밟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 오락실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엄마의 무릎에 누웠을 때 느껴지던 냄새와 소리들 등 대부분 부모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이일 땐 내 부모, 특히 (대부분 주양육자인) 엄마가 내 곁에 머문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는 내 세상의 전부다. 그의 눈짓 한 번으로 나는 무력하게 웃고 울고를 하게 된다. 이때 딸과 엄마의 관계는 복잡하다. 딸은 어린시절 엄마와 나를 동일시 하곤 한다. 나는 그와 한 몸이라 믿는다. 하지만 결국 분리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애니 존>은 바로 그 모녀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는 작은 텃밭 한구석의 작은 화분들에 온갖 허브를 키웠기 때문이다. 허브를 따다주면 간혹 몸을 숙여 내 입에, 그 다음엔 목에 입을 맞췄다. 나는 그런 낙원에 살고 있었다."
외동딸인 애니 존은 엄마를 독차지 하며 자랐다. 그와 같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 누구보다 나의 엄마가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더이상 나와 같은 옷감으로 옷을 만들지 않는다. 이전처럼 안아주지 않는다. 나에게도 엄마가 모르는 세계가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징글징글하게 미워하면서도, 나는 문을 쾅 닫는 방식으로 엄마에게 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불행했고, 세상이 온통 불 타는 것처럼 보였고, 그 불 타는 세상의 끝에는 항상 엄마와 내가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도 그랬다. 엄마와 나는 끊임없이 싸웠다. 엄마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나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나의 딸이 되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렬하게 엄마의 이해를 원했다.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금와 생각하면 나는 엄마를 지독하게 사랑했다. 절대적인 사랑을 오직 하나의 대상에게 바랐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 건 바로 그 순간이지 않았을까. 사랑이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사랑이 돌아오지 않을 땐 미움의 마음까지도 갖게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전에는 너무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그 사람이 죽었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가 죽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만약 엄마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 할 테고, 엄마가 죽는 걸 상상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나의 죽음은 상상하기 어려우니 더 문제였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해받기 원하는 만큼 상대(엄마)를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가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했다.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강렬하게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사랑을 갈구할 대상이 사라지면 이 불행도 모두 끝이 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집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엄마와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엄마의 과거가 진짜로 궁금해졌다. 내가 나일 때가 있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본인의 모습일 때가 있다는 것을, 그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시대와 배경이 모두 다른 소설 <애니 존>에서 머나먼 내 과거를 꺼내 보았다. 내가 사랑을 처음으로 하던 순간을, 그 지독하고 괴로웠지만 그것마저 또다른 형태의 '낙원'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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